글 수 9
2011.05
08
1)음력과 24절기
정월의 설날, 정원대보름, 단오..은 우리의 전통명절로 음력을 기준으로 한다.
정월대보름과 설날은 달의 주기와 일치하는 명절임을 알 수 있으며
어부들의 물때를 알려주는 밀물 썰물의 주기를 알려주는 것으로 쓰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밤하늘에 떠오르는 초승달,상현달,보름달,하현달,그믐달로 불려지는 것이다.
음력한달의 시작은 그믐으로 계산하며 달이 지구를 한바퀴 도는데 29일 반이 걸린다고 과학자는 말한다.
타원괘도를 도는 지구가 태양 가까이 가는 겨울에는 달의 공전주기가 길어져 30일이 걸리고,여름과 가을에는 짧아져 29일이 걸린다.
그래서 음력1년은 354일이다.
그런데 실제 한해의 계절이 한번 바뀌는데는 365.24일이 걸리며,
음력의 1년은 11일 가량이 태양의 주기와 차이가 나 계절이 앞당겨지는 모순으로 윤달을 만들어 19년에 7번을 넣음으로 이런 격차를 줄였다.
이런 격차와 상관없이 태양의 주기와 일치되는 것이 있었는데,
지구가 태양을 한바퀴 도는 것을 24등분해서 24절기의 이름을 붙이고 해당되는 날씨의 특성을 한자로 표기를 하였다. 그것이 선조들이 만든 음력 24절기이다.
24절기는 예로부터 농사의 씨 뿌리기 수확시기등에 따라 이용을 하며 사용하였다.
입춘일은 대부분 양력 2월4일 이지만 가끔 2월3일 혹은 2월5일에 입춘이기도 하며 다른절기도 마찬가지로 2일~3일의 변화가 있다.
절기상으로 입춘일을 한해의 시작으로 보며, 기운이 새로이 바뀌는 시기로 보며사주의 기운도 입춘시기로 12지지(띠 자축인묘....)를 다르게 본다.
가끔 이를 잘 몰라서 평생 자신의 띠를 잘 못 알거나 헷갈려 하는 경우가 많음을 볼 수있다.
2월 입춘 (立春) 시기양력 2월 4일 또는 5일 봄의 시작
우수 (雨水) 시기양력 2월 18일 또는 19일 봄비가 내리고 싹이 틈
3월 경칩 (驚蟄) 시기양력 3월 5일 또는 6일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깸
춘분 (春分) 시기양력 3월 20일 또는 21일 낮이 길어지기 시작
4월 청명 (淸明) 시기양력 4월 4일 또는 5일 봄 농사 준비
곡우 (穀雨) 시기양력 4월 20일 또는 21일 농사비가 내림
5월 입하 (立夏) 시기양력 5월 5일 또는 6일 여름의 시작
소만 (小滿) 시기양력 5월 21일 또는 22일 본격적인 농사의 시작
6월 망종 (芒種) 시기양력 6월 5일 또는 6일 씨뿌리기
하지 (夏至) 시기양력 6월 21일 또는 22일 낮이 연중 가장 긴 시기
7월 소서 (小暑) 시기양력 7월 7일 또는 8일 여름 더위의 시작
대서 (大暑) 시기양력 7월 22일 또는 23일소개더위가 가장 심한 시기
8월 입추 (立秋) 시기양력 8월 7일 또는 8일 가을의 시작
처서 (處暑) 시기양력 8월 23일 또는 24일 더위 식고, 일교차 커짐
9월 백로 (白露) 시기양력 9월 7일 또는 8일 이슬이 내리기 시작
추분 (秋分) 시기양력 9월 23일 또는 24일 밤이 길어지는 시기
10월 한로 (寒露) 시기양력 10월 8일 또는 9일 찬 이슬이 내리기 시작
상강 (霜降) 시기양력 10월 23일 또는 24일 서리가 내리기 시작
11월 입동 (立冬) 시기양력 11월 7일 또는 8일 겨울의 시작
소설(小雪) 시기양력 11월 22일 또는 23일 얼음이 얼기 시작
12월 대설 (大雪) 시기양력 12월 7일 또는 8일 겨울 큰 눈이 옴
동지 (冬至) 시기양력 12월 21일 또는 22일 밤이 연중 가장 긴 시기
1월 소한 (小寒) 시기양력 1월 5일 또는 6일 겨울 중 가장 추운 때
대한 (大寒) 시기양력 1월 20일 또는 21일 겨울 큰 추위
2)조선의 천문
조선시대에는 음력의 정확성을 일식과 월식의 정확히 예측하는 것으로 검정을 하였으며 일식날에는 임금님까지 나와서 일식을 지켜볼 정도였다고 합니다.
만일 계산이 틀려 시각이 잘못되면 관측관료는 중벌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세종대왕시절에는 그림자를 이용해 동짓날의 정확한 시각과 주기를 찾아냈던 도구인“규보”가 활용되었습니다.
측우기(비의 양측정)와 규보와 양부일구(해시계), 자격루(자동 물시계)등 모두 세종대왕의 백성을 편히 살게하고 배풀리 먹이려는 과학영농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봄의 농사를 망치면 그해의 나라경제도 어려운 결과이겠지요!
세종11년에는 삼남(경상도,전라도,충청도)의 우수한 농사법을 모아<농사직설>의 책을 펴내서 그당시에는 2.3년에 한번씩 벼농사를 지었으나 1년에 한번 벼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재와 인분의 영양분사용) 이렇게 새로운 영농기술로 궁중에서 직접농사를 지어 연구를 했다니 대단하지 않습니까?
이러한 농사법등을 농민들에게 알리려면 쉬운 글이 필요하였을 것이고 한글이 나오게된 배경도 여기에 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당시에는 고려말부터 쓰던 중국의 수시력을 사용하였는데 조선의 해뜨는 시각등과 맞지 않아 원(元) 나라의 수시력법(授時曆法)과 명(明) 나라의 통궤력법(通軌曆法)을 참고하여 새로이 천체움직임을 관찰하고 정확한 시간을 측정하여 한양경복궁을 중심으로 위도를 정확히 재고 그 위도에서 시각을 재어 연구하여 조선의 달력 “칠정산”이 만들었습니다.
음력은 우리선조들이 일군 당대천문학의 자부심이었습니다.
현재는 아직도 일제의 잔재를 다 떨치지 못하여 일본의 위도를 중심인 시각(동경)으로 원래는 子時가 23시~01로 보는데 30분이 늦어져 子時를 23:30분~01시30분이 되는 것입니다.
유교적인 풍습을 잘 지키는 가정에서는 현재의 자시 23시 30분이후에 조상의 제사를 지낸다고 봅니다.
3)양력의 사용시기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양력이 들어온 시기는 1895년 을미개혁 때입니다..
그러나 을미개혁은 일본의 강요로 개혁파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 고종이 양력을 실질적으로 인정하지를 않았습니다..
고종과 개혁파의 갈등은 수개월동안 이어지다가 결국 1896년 1월 1일부터 태양력을 실시했습니다.
이런 연유로 해방 이후에는 양력이 일본인의 달력이고 우리의 달력은 음력이라는 생각으로 음력을 부활시켜서 민가에서는 음력이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4)태음태양력
국제화 시대에 맞추려면 양력사용이 편리하다는 생각으로 양력을 권장하며
생활에 주로 사용을 하고 있으며
민속 행사는 음력으로 하는 것이 옳다는 주장들이 많아서 지금도 음력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요..
한국이 사용하는 현행음력은 조선시대의 “태음태양력”으로 달의 주기와 해의 주기가 모두 녹아있는
달력이라고 봅니다.
해와 달이 공존하며 양력과 음력이 공존하고 해가지기도 하고 뜨기도 하며 달이 뜨기도 하고 지기도 하니 만물을 이분법으로 보는 시각보다는 둘다 보는 시각이 조금은 복잡하게 보여도 올바르지 않을까요~